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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현대미술: 세기말 21

by nikaj 2024.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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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 세기말

 

미술 시장은 1973년의 키푸르 전쟁에 이은 오일쇼크의 경제 위기에 의해 극도의 타격을 입었다. 따라서 이제 형식상의 참신함이라는 영역의 외부에서 창작 행위가 이루어지던 이 때에, 미술 시장은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야 했다. 같은 시기에 1977년 조르주 퐁피드 센터의 건립은 현대 미술의 향상을 위한 수 많은 기관이 등장하는 시대의 막을 열었다.

 

조각 그리고 설치 미술

 

조각에서 앤서니 카로의 궤적은 본보기가 되었다. 그는 산업적 재료를 활용하여 추상 조각을 제작 하였다. 이 추상 조각들은 다색성을 확립한 회화성을 지녔고, 공간속에 펼쳐지는 파괴된그림의 형상처럼 들쭉날쭉한 정면을 하고 있었다. 카로는 얇으면서 견고한 금속의 속성을 이용해 점점 더 열려있는 형태의 조각을 만들어 낼 수 있었고, 이는 투명한 격자의 사용을 통해 더욱 두드러졌다.

 

1969년 리처드 세라는 한 장의 사진을 통해 납을 던지는 사람으로 대중에게 알려졌다, 세라는 투구를 쓴 현대 전사의 모습으로 가스마스크 뒤에 얼굴을 숨긴 뒤 일종의 투석기 같은 것을 사용, 아틀리에이자 전시장인 공간의 구석구석에 녹은 납을 던졌다. 격렬하게 공간을 공격하는 이러한 시조격인 묘기는 브랑쿠시에게서 물려받은 것이었는데, 그는 받침대를 제거함으로써 ‘20세기 조각 역사에 가장 커다란 단절을 이루어 낸 인물이었고 세라는 브랑쿠시가 열어놓은 돌파구 속으로 돌진함으로써 조각의 규범을 위반했다. 이를 통해 그는 조각 규범의 역동적 기능을 재창조했다.

 

프랑스의 크리스타앙 볼탕스키는 작은 미술관들의 영원히 죽어버린 사라진 유년기의 일람표를 그려 보였다. 점차 조금씩 더 야심찬 설치 작품들이 기초적인 조명 및 광학 장치를 통해 거대한 전시 공간의 어둠을 꿰뚫었다. 벽 위로 지나가는 천사의 그림자는 어림잡아 잘라낸 철판으로 된 작은 상의 그림자였다. 노출 된 여러 개의 전구들은 전깃줄의 아슬아슬한 그물 끝에 매달려, 익명의 초상화들이 그려진 제단화의 호화로운 비참함으로 치장하고 있었다. 이러한 모습은 영원히 상실된 황금시대의 거들먹거리는 예배를 올리는 연극적인 성상벽과도 같았다. 유년기 자체는 이미 역사에 의해 짓뭉개져 있었다.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무제>, 1989년, 개인소장. 비스킷 상자, 전구. 흑백 및 세 가지 색의 사진 사용. 비극적 기념비로서 유태인 대학살을 환기시키는 이 작품은 성상벽과 유사한 모습을 통해 성(聖)과 속(俗)사이에서 사진술의 신비로운 힘과 살인적 폭력을 보여준다. 볼탕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깨지기 쉬운 약함과 소멸의 개념을 검토한다. 나의 작품이 유년기를 다루었다면, 그 이유는 유년기가 나의 흥미를 끌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이 바로 유년기이기 때문이다.” Ph.D. Tamviskos ⓒ Galerie Ghislaine Huessenot/ ⓒADAGP,1999

 

 

존 케이지와 가까웠던 백남준은 수많은 해프닝의 작가, 배우이자, 네오 다다운동인 플럭서스의 주창자였다. 그는 현대 미술의 방랑자 전형을 이루는 이력의 소유자다. 그는 1932년 서울에서 태어나 도쿄에서 공부하고 뉴욕에 거주했으며, 뒤셀도르프에서 가르쳤다. 백남준은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로서 마치 유랑극단 배우처럼 도처에 등장했으며, 국제 미술계를 빠짐없이 일주하는 여정을 보여주었다. 그는 야만인 같은 혈기로 비디오와 모니터 아상블라주를 다루었으며, 이러한 혈기는 미칠 듯 열광적인 그의 욕망에 기술을 굴복시켰다. 1988년 그의 고향에서 열린 올림픽 경기에서는 이미지와 빛을 만들어내는 화면이 수백 개 놓여져 새로운 깃발들, 바벨탑을 연출해 냈다.

아상블라주(assemblage):폐품이나 일용품을 비롯하여 여러 물체를 한데 모아 미술작품을 제작하는 기법 및 그 작품. ‘아상블라주란 프랑스어로 집합·집적을 의미하며, 특히 조각 내지 3차원적 입체 작품의 형태를 조형하는 미술상의 방법을 말한다.

 

 

프랑스의 구상적 흐름

 

프랑스에서는 미술과 미술시장의 수명을 결정짓는 듯한 10년 주기의 랑데부에 맞추어 1980년 새로운 화가 그룹이 결성되었는데 유종의 미를 거두기전시회에서 탄생한 자유구상이었다.

 

구상은 유행이나 스타들의 영향력에서 떨어져 갤러리와 기관의 와부에서 시작되었고, 대중적 재치를 겸비하던 자유구상은 자연스러움과 매스미디어문화 및 매우 다양한 신화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였다.

 

화가인 에르베와 조각가인 리샤르 디 로자는 종종 서로 합작하여 활기찬 디즈니랜드와 조악한 사치스러움을 통해 무례한 영웅의 모험을 이야기했다. 이모험이란 범람하는 시각적 효과와 조잡한스타일의 경쾌함으로 가득차 아무것도 거리끼지 않는 것이었다.

 

반면 제라르 가루스트는 전통적 기교와 가장 권위 있는 문화적 기준의 취향을 연마하였다. 그는 포스트모던적으로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근대적 전통속에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는 생각이 존재한다. 그런데 나는 미래란 복고주의적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효력을 잃은 초상학적 주제들을 되살렸다. 그리고 1983년에는 아빌라의 성 테레사의 신비스러운 환희를 주저 없이 그렸다. “나의 의도는 옛날 회화를 모방하거나 그것을 칭송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극히 현대적인 화풍을 구하사기 위한 구문으로서 예전의 회화를 이용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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