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 세기말 2
뉴욕 이미지
세기말 다시 전통적인 ‘회화’로 돌아가려는 흐름에서 미국의 미술계도 자유롭지 못했다. 전통적인 미적 범주와 결별하겠다는 몽상은 더 이상 회젯거리가 되지 못했고 스펙터클사회의 주도자이자 볼모였던 뉴욕의 화가들은 차례로 서술과 연극적 이미지에 의존하게 되었다.
70년대말 나타난 키스 해링과 장 미셸 바스키아는 표의 문자 및 거리나 지하철의 그래피티로 솜씨를 겨뤘는데 그들은 그것들을 격렬함이 아님 보편적 동기로 사용했다.
장 미셸 바스키아는 자신의 각각의 작품에서 ‘80%의 분노’를 보장했다. 환각에 빠진 해골들에 사로 잡힌,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그의 열광은 단지 7년간만 지속되었는데, 그 기간은 미술계를 요란하게 흔들고, 세상을 뒤집고, 여러 기준과 문화 사이를 오가고, 숨가쁜 리듬으로 그림을 그린, 시간이었다. 어느 여름 밤 그는 27세의 나이에 약물과다 복용으로 세상을 떠났고 키스해링 또한 31세의 나이에 요절하였다.
독일의 신표현주의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독일 회화의 자신만만함은 독일 자체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었다. 독일은 산업적, 상업적 발달을 완수했고 독일 회화는 자연스럽게 표현주의와 서술 및 표현의 즐거움을 지향했다. 표현주의로 회귀하는 것이 유일하게 기준을 삼은 것은 결코 어떤 유파나 정확한 스타일을 구축한적 없었던 1920년대의 아방가르드였다.
안젤름 키퍼는 가장 도발적인 미술가였는데 보이스의 제자였던 그는 유태교 신비 철학과 성서, 2차 세계대전의 역사 속에서 모호한 신화의 요소들을 길어 올렸다. 그는 주저 없이 끈질기게 북구의 신화와 민족적 사회주의의 결합을 되살려냈다. 그는 두텁고 풍성하며 진흙 같은 재료 속에 뿌리박은 ‘영웅적 회화를 제작했다. 이런 회화는 건국 신화의 요소들을 풍부하게 담고 있었는데 오래된 숲 아래 난 오솔길이나 땅과 뱀, 무덤, 불꽃으로 이랑 진 고랑의 모습을 표현했고 교육적 면모를 강조해 이야기했다.
게오르크 바젤리츠는 좀더 고전적이고 질서 정연한 궤적을 보여주었는데, 그는 끌을 사용하여 자유롭게 파낸 커다란 목판화 작품들을 만든 후, 거대한 형상과 죽은 나무로 잠식된 육중한 회화 연작을 자수 제작하였다. 그의 작품의 회화적 질감이 주는 불투명성은 점차 밝아져,<영웅>을 상징하는 형상을 묘사한 거만한 몸짓의 투명성에 다다랐다. 그리고 1969년부터 그는 ‘거꾸로 된’ 이미지를 표현하였다. 이처럼 전도된 형상의 모습은 바젤리츠의 유명한 이미지를 확립시켜 준 괄목할 만한 방식이었다. 또한 이와 같이 이미지는 격렬한 기호와 생생한 색으로 이루어진 광기 같기도 했다.
이런 회화는 정육점에 걸려있는 고기 덩어리처럼 보이기에 더욱 도발적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격렬함에 필적할 수 있는 것은 직접 깎아 내기 방식으로 만든 그의 조각들뿐이었다.
그의 조각은 도끼로 나무를 쳐서 조잡한 덩어리에서 형상이 나타나게 만든 것이었다. 급히 칠한 다색으로 장식된 이 형상들은 거칠고 비장한 모습을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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