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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현대미술: 6070 아방가르드 20 극사실주의

by nikaj 2024.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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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방가르드 1960~1970

 

극사실주의

 

1970년대 초 미국에서 전격적인 성공을 거둔 극사실주의는 몇몇 유명 갤러리나 정평 있는 미술 평론가들이 강조하는 유사성을 보여주는 것 이상으로 매우 다양한 미술들을 결집 시켰다.

그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팝아트에 의해 현대화된 사진술을 사용한다는 점이었는데, 가장 전통적인 회화 기법과 확고부동한 시각적 사실을 표현하는 기계와의 만남이 그토록 호소력을 지녔던 적인 일찍이 없었다.

 

존 디 앤드리아는 실제보다도 더 사실적인 누드를 조각하여 임상적인 완벽성을 보여주었다. 체모나 소정맥 하나까지도 완벽하게 표현한 그의 작품은 한 순간 살결 아래에서 생명이 약동하고 있다고 믿게 만들 정도였다.

 

척 클로스는 편집광적인 손길로 작은 신분증 사진을 거대한 크기로 만든 작품을 선보였다. 그의 작품은 사각형 틀에 맞춘 크기의 확장을 통해 즉석 사진 기술의 약점을 들추어냈을 뿐만 아니라, 초상화 미술의 판별기준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추상의 부활

 

미국의 미니멀아트는 형태는 오브제이다라는 입장을 천명하면서 러시아 구성주위의 급진적 경험 이와의 다른 모든 기준을 거부하며 비미술의 진영에 위치하고자 하였다. 미술에서 중요한 것은 단지 전이성 없는 존재 효과일 뿐이었다.

 

1933년 뉴욕에서 태어난 댄 플레이빈은 거의 성직자적인 태도를 지향했다. 그는 표현을 절약하는 얀센파적인 취향을 자신의 첫 번째 소명으로 간직하고 형광등 불빛을 사용하는 것을 전공 삼아 미니멀 아트 스타 중 한명이 되었다. 1961년부터 그는 간결하고 빛나는 공간적 효과를 표현하였는데 이런 자품은 모든 서술적 요소를 배제함으로써 가장 유려한 물질적효과에 도달하기 위한 것이었다. 댄 플레이빈의 설치 작품은 절대를 추구하는 총체 미술로서, 바로크 장식의 장치들과 유사했다. 말 그대로 손댈 곳 없는 빛은 색의 근원이자, 동시에 건축적 공간의 변형으로 존재했다.

 

외양상의 오만한 순결성을 갖춘 미니멀 아트는 치수에 맞춘 듯 재단된 형태를 하고 미술관이나 갤러리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미술사 및 문화적인 무거운 짐과 손을 끊으려 했다. 또한 미니멀 아트는 사고의 위생학이자 미적 경험의 정화로서 미술적 생산을 급진화시켰다. , 모든 감정이나 의미의 발현을 근절시키는데 주의를 기울여 은행의 홀이나 문화적, 상업적 기관 내에 전시됨으로써 그 용도를 규격화한 것이다.

 

또한 미니멀 아트는 로고와 같은 외양을 통해 기능적인 성격을 가졌고, 미술적 대상과 그것을 감상하는 사람 모두를 만족시키는 교류 속에서 언제나 그 특유의 구별적 성격을 나타냈다.

 

미니멀 아트는 추상표현주의와 마찬가지로, 유럽의 가장 즉각적인 영향력에서 벗어난 미국의 현대 미술 운동으로서 면모를 보여주었고 프랑스에서 일어난 쉬포르/쉬르파스의 일시적 모험이 이에 화답하였다.

 

1970년 여름, 5명의 무명 미술가들이 그들의 입장을 표명하는 12점 가량의 작품을 야외에 선보였는데 그들은 틀을 떼어내어 반쯤 깃발 같은 캔버스와 몇 개의 밧줄을 남불의 해변과 마을에 설치하였다. 이 작품들은 집권적인 절대 권력과 채색과 회화의 또는 배경과 형태의 구분, 캔버스 틀과 그림의 관습, 미술 시장의 요구사항, 그리고 샐러리나 미술관의 속박에 유쾌하게 항의할 것을 제안하였다.

또한, 이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물질주의적쉬포르/쉬르파스의 명칭으로 전시하는 것에 동의 함으로써 가을부터 이들의 작품을 파리 시립 현대 미술관에서 볼 수 있었다.

 

쉬포르/쉬르파스 그룹의 주창자 중 하나였던 클로드 비알라의 말에 따르면, 개개의 작품은 그것을 만들어낸 작업의 형상을 그대로 띠는것이었다. 그 역시 자갈과 선박용 매듭의 모양을 나란히 표현함으로써 근원적인 물질성을 강조하는 데 전념하였다.

 

클로드 비알라,<무제>,1988년,앙티브,방수포 위에 아크릴릭,342×372, 피카소미술관 애호가 연합이 구입, 1970년 여름, 비알라는 다른 네 명의 젊은 미술가들과 함께 남불과 해변과 마을에 틀을 떼어낸 캔버스와 밧줄 작품을 설치하였다. 가을에 이 작품들은 파리 현대 시립 미술관에 전시 되었는데, 이들은 ‘쉬포르/쉬르파스’라는 명칭으로 그들의 ‘작업물’을 전시하였다. 1966년 이후 비알라는 작은 뼈같기도 하고 스펀지 같기도 한 ‘그려야 할 형태’에 충실하게 임했다. 이러한 형태는 벽돌공에게 벽돌이 그러하듯 생산의 도구였다. 따라서 이 형태는 의미의 문제를 몰아내고 ‘제조’를 위한 것이었다. Ph. P. Trawinski ⓒ courtesy, galerie jean Fournier ⓒADAGP,1999

 

대지미술

 

대지미술가들은 미니멀 아트의 조형적 구조 및 아르테 포베라가 소망하던 신화적 차원에 근접한 작품을 만들었으며 그들은 갤러리 미술과 아틀리에를 떠나 네바다나 캘리포니아 사막으로 갔다.

기초적 형태를 콜럼버스 발견이전의 미로에서 자주 영감을 받았고 공간을 넓게 차지하고 변형 시켰다.

 

로버트 스미드슨은 유타주에 거대한 <나선형 방파제>를 건설했고, 마이클 하이저는 거대한 산의 조각들을 옮겨놓았다.

윌터 디 마리아는 1974년부터 1977년까지 뉴멕시코의 사막에 <번개치는 들판>을 조성하였다.

 

영국의 조각가 리처드 롱은 1967년 산보자가 풀숲을 일직선으로 몇 번 오고 간 발자국 흔적을 사진으로 찍었고, 10년 후에는 자연에서 가져온 다른 재료들을 흙 위에 놓고 원 안이나 두 평행선 사이에 위치시키고서, 그 가운데에 <부유하는 나무의 선>을 전시하였다.

 

또한 그는 1981년부터는 그의 고향을 흐르는 에이본강에서 채취한 진흙을 손으로 벽에 바르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는 간단히 이것이 가장 좋은 색이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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