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미술: 색 :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
노르웨이의 화가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 1863~1944)는 표현주의의 선구자이자 유럽 현대 미술의 대표 주자다. 인간의 삶과 죽음, 사랑, 불안과 고독 등 인간의 심오한 감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가로 알려져 있다. 뭉크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왜곡된 형태와 강렬한 색감으로 무수히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의 독창적인 표현기법은 회화뿐만 아니라 연극, 영화 등 독일 표현주의 예술에 큰 영향을 끼쳤다.
모더니즘에서 뭉크의 공헌은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평생에 걸쳐 작품의 형태, 재료 및 색상에 있어 관행적 예술 규범을 무시해 왔고, 그 때문에 동시대 부르주아와 보수적인 미술 비평가들을 도발했다. 회화에서 보이는 명백히 미완성적이며 습작처럼 보이는 특징, 그리고 판화에 에디션 넘버와 서명이 포함된 판본을 체계적으로 제작하는 것을 거부한 것이 대표적이다.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걸작 <절규 The Scream>를 포함한 그의 개인적 경험을 다룬 작품들은 뭉크의 대표적인 스타일을 반영하고 있으며, 시선을 사로잡는 동시에 강한 호소력을 지녀 현대미술의 대체 불가능한 상징이 되었다.
<예술의 전당 보도자료>
1863년 노르웨이 뢰텐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미술에 자질을 보여 1877년부터 수준 높은 그림을 그렸다. 가족을 덮친 병마로 큰 슬픔을 겪고 죽음은 반복적 주제가 되었다.
1892년 이미 표현주의 성향을 보이던 그의 작품들이 베를린 예술가 연합으로부터 전시초청을 받고 전시에서 파문을 일으켰으며 그 후로 베를린 분리파를 탄생시켰다.
1893년 ‘절규’에 이어 94년에는 ‘불안’을 완성하였다.
1899년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 미술과 라파엘로에 매혹된 그는 영감을 얻어 장식 패널화들과 ‘빨간 덩굴풀’(1898~1900년), ‘골고다’(1900년)를 그렸다.
1901~1913년 비엔나에서 그의 작품들이 정기적으로 전시되었다.
1902년 1893년에 시작한 ‘생의 프리즈’연작을 베를린에서 전시하였다. 이 작품에서는 사랑과 죽음, 여인의 사악한 성격이라는 주제를 통해 인간의 세 시기가 표현되었다. 그 자신이 결혼을 거부한 툴라 라르센과의 결별사건으로 왼손에 상처를 입었다. 이 비극적 사건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정물’(1906년, 1907년)과 ‘마라의 죽음’(1907년)등 몇 점의 그림을 그렸다.
1903년 파리독립예술가협회의 일원이 되어 그들의 미술전에 참여하였다.
1904년 베를린 분리파의 정식 멤버로 임명되었다. 그에게 하나의 전시실 전체를 내어주고 이곳에서 전시한 20점의 그림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1906년 입센의 연극 ‘유령들’과 ‘헤다 가블러’의 무대장치를 제작하였다.
1908년 알코올 중독과 심한 쇠약 증세를 보여 덴마크에서 요양하였다.
1910년 노르웨이의 오슬로로 돌아가 미역 감는 장면과 동물 등 평온한 자연을 그렸다. 좀 더 보편적인 표현을 추구하여 일종의 사회적인 성찰을 담은 ‘눈 치우는 사람들’(1911년), ‘집으로 돌아가는 노동자들’(1912년)을 그리게 된다.
1922년 오슬로의 한 초콜릿 공장 벽화를 제작하였다.
1937년 나치가 “퇴폐미술”이라는 명목으로 독일 미술관에 있던 그의 작품 82점을 압수하였다.
1944년 오슬로 근처 에켈리의 자택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하고 독일군과 나치의 접촉을 일절 거부하였다.
참고문헌:생각의 나무 <근대미술> p38
내 예술에서 나는 삶과 그 의미를 나 자신에게 설명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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