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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75

현대미술: 세기말 21 현대미술: 세기말   미술 시장은 1973년의 키푸르 전쟁에 이은 ‘오일쇼크’의 경제 위기에 의해 극도의 타격을 입었다. 따라서 이제 형식상의 참신함이라는 영역의 외부에서 창작 행위가 이루어지던 이 때에, 미술 시장은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야 했다. 같은 시기에 1977년 조르주 퐁피드 센터의 건립은 현대 미술의 향상을 위한 수 많은 기관이 등장하는 시대의 막을 열었다.   조각 그리고 설치 미술   조각에서 앤서니 카로의 궤적은 본보기가 되었다. 그는 산업적 재료를 활용하여 추상 조각을 제작 하였다. 이 추상 조각들은 다색성을 확립한 회화성을 지녔고, 공간속에 펼쳐지는 ‘파괴된’그림의 형상처럼 들쭉날쭉한 정면을 하고 있었다. 카로는 얇으면서 견고한 금속의 속성을 이용해 점점 더 열려있는 형태의 조각을 만.. 2024. 9. 25.
현대미술: 6070 아방가르드 20 극사실주의 아방가르드 1960~1970 극사실주의   1970년대 초 미국에서 전격적인 성공을 거둔 극사실주의는 몇몇 유명 갤러리나 정평 있는 미술 평론가들이 강조하는 유사성을 보여주는 것 이상으로 매우 다양한 미술들을 결집 시켰다. 그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팝아트에 의해 현대화된 사진술을 사용한다는 점이었는데, 가장 전통적인 회화 기법과 확고부동한 시각적 사실을 표현하는 기계와의 만남이 그토록 호소력을 지녔던 적인 일찍이 없었다.   존 디 앤드리아는 실제보다도 더 사실적인 누드를 조각하여 임상적인 완벽성을 보여주었다. 체모나 소정맥 하나까지도 완벽하게 표현한 그의 작품은 한 순간 살결 아래에서 생명이 약동하고 있다고 믿게 만들 정도였다.   척 클로스는 편집광적인 손길로 작은 신분증 사진을 거대한 크기로 만든 .. 2024. 9. 24.
현대미술: 6070 아방가르드 19 구상의 부활 현대미술: 1960~1970 아방가르드2   구상의 부활   1960년대 중반 파리에서는 프랑스인 미술 비평가 제랑드가시오 탈라보의 주도로, ‘서술적 구상’의 출현을 표명하는 일련의 전시회가 열렸다. 이 명칭은 논쟁적 의도로 채택된 것이기는 하지만, 이미 많은 유파로 포화 상태에 이른 미술사에 또 다른 ‘이즘’을 보태는 일을 피하기 위한 의도로 붙여졌다 이 화가들은 미술관과 슈퍼마켓을 분명히 구별지었다. 이들은 텔레비전과 영화, 만화에 맞서서 단순한 모방의 안락함보다는 창조의 위험을, 이비지의 분명함 보다는 모호함을, 단순명료한 사실보다는 수수께끼와 도발을, 정적인 아이콘보다는 필연적으로 움직이는 표현의 비밀을. 무미건조한 검토보다는 ‘서술적인’ 조합을 선호했다. 회화 언어의 재구축이라는 멋진 시도에 뛰.. 2024. 9. 20.
현대미술: 1960~1970 아방가르드18 현대미술: 1960~1970 아방가르드   1962년 소비에트 연방이 쿠바에 미사일을 배치함으로써 야기된 위기는 세계를 핵전쟁 일보 직전으로 몰아갔고 전쟁은 가까스로 피했지만 공포스러운 균형은 동구와 서구라는 두 진영으로 전면적으로 대치했으며 누구든 자신의 진영을 선택해야 했다.이렇게 조직화되는 세상 앞에서, 미술은 자신의 광란의 질주를 가로막을 수 있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는 길을 택했다. 회화와 조각의 전통적인 미적 범주는 폭발했고, 생생한 볼거리가 지원군 역할을 했다. 건축과 디자인도 조력자가 되었다. 미술은 과도할 정도로 그 특수성을 주장했으며, 이 특수성은 미술에 모든 권리 특히 파멸의 위험을 안고도 영역을 확장시킬권리를 부여했다. 미술가의 태도나 작품의 ‘콘셉트’가 중요해지고, 미술의 유희는 사.. 2024. 9. 20.
현대미술: 팝아트 17 현대미술: 팝아트   팝아트의 시초에는 ‘해프닝’이 있었다. ‘해프닝’은 무용가이자 안무가인 머스 커닝엄, 음악가 존 케이지, 화가 로버트 라우셴버그가 1952년 블랙 마운틴 칼리지에서 만남으로서 시작되었다. 이 ‘퍼포먼스’의 예술은 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 아주 다양한 표현 형식을 뒤섞여 놓았다.미적인 범주와 전통적인 문화적 위계질서를 동시에 뒤엎기 위해 순간적 효과를 노린 즉흥적 표현들이 앞 다투어 생겨났다.   팝아트의 출현 역시 문화적 위계질서와 미적 범주에 대해 다시 질문을 던진다는 특징이 있었다. 당시까지 상극으로 치부되었던 이 두 단어의 조합은 1955년 영국의 미술 비평가 로렌스 엘러웨이로부터 시작되었으며,, 대중문화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들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팝’이라는 단어는 195.. 2024. 9. 16.
현대미술: 1950년대 미술 16 현대미술: 1950년대    매우 현대적인 1950년대전후 세계 곳곳은 재건과 소비의 시대로 들어섰다. 원색의 거대하고 호의적인 신호기들이 세워졌으며 그것들은 상상의 세계, 그리고 어린 시절 꿈의 시와 화해와 좀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약속을 가득 담았다. ‘이유가 필요치 않은 순진무구함’의 정반대편에서는 끔찍한 주거용 건물들이 교외의 풍경을 침범하고 있었다. 이 건물들은 아주 능력 있는 건축가들의 현대주의적인 기증주의의 산물이었다. 노동력을 집어삼키는 산업의 비약에 필요한 베이비 붐‘을 조성하기에 적합한 것 이었다. 르 코르뷔지에는 소련의 스타하노프 재건 운동가들과도 같은 이들에게 반기를 들고 마르세유의 ‘집합주택’-‘정신 나간 사람의 집’이라 불렀던-을 실현하였다. 이 건물의 건축은 온갖 비난과 매우 .. 2024. 9.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