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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근대미술: 12 앙리 마티스 (Henri Matisse)

by nikaj 2024.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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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미술: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 샤토캉브레시에서 앙리 마티스가 태어났다.

 

1891 법률을 공부하고 뒤늦게 회화에 입문하였다. 파리 미술학교에서 귀스타브 모로의 아틀리에에 들어갔으며, 나비파,

세잔, 렘브란트의 영향을 받았다.

 

1904 시냐크와 함께 여름을 보내면서 점묘화들을 그렸다.  <사치, 고요, 그리고 쾌락>에서 그의 주제는 이미 명확히 드러

났다.

 

1905 <모자를 쓴 여인>이 가을 살롱전에서 파문을 일으켰다. 마티스는 야수파의 수장으로 간주되었다.

 

1907 오랜 연작의 첫 작품인 <푸른 누드>(볼티모어 미술관)를 그렸으며, 이탈리아를 여행하였다.

 

1908 그의 아틀리에에 자리한 아카데미가 많은 외국인들, 특히 독일인과 스칸디나비아인 들을

끌어 모았다.

 

1909 러시아인 수집가 슈츄킨이 그에게 <> 그리고 1910년에는 <음악>(에르미타슈 미술관, 상트페테르부르크)을 주문하였다.

 

1911 <푸른 창>(MOMA,뉴욕)을 그렸다. 그의 전 작품을 통해 심화되는 창의 주제는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회화적 명성들 중 하나가 된다.

 

1912-1913 탕헤르에서 여름을 보내면서 아라비아 모티프들에 매혹되었다. 자신으 ㅣ장식 구성 작품들에 이 모티프들을 사용하게 된다. 그에게 있어 빛의 색이었던 검정이 작품에서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런 작품으로는 <피아노 레슨>(1916, MOMA, 뉴욕)이 있다.

 

1914 <콜리우르의 프랑스 창>(개인 소장)은 자연을 향해 열린 창으로서 예술에 대한 알베르티의 은유의 반복이었다.

 

1917-1918 <창가의 바이올리니스트>(MNAM, 파리)는 뒤샹과 마찬가지로 마티스에게서도 투명성에 대한 성찰의 영속성을 보여주었다.

 

1930 타히티와 뉴욕을 여행하였다.

 

1943 전쟁 동안 심각한 수술을 받았다. 1947년에 출판된 책 재즈를 위해 첫 번째 색종이 오리기 그림들을 제작하였다.

 

1946 니스와 방스에서 생활하였다.

 

1948 방스 로즈르 성당 스테인드글라스의 세 모형과 아시 고원에 있는 노트르담 드 투트 그라스의 <성 도미니크>를 제작하였다.

 

1949 파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시회가 열렸다.

 

1952 <푸른 누드>(개인 소장, 파리와바젤) 연작을 그렸다. 색종이 오리기 그림들은 <왕의 슬픔>(MNAM, 파리)에서 기념비적 차원에 도달하였으며, 사망할 때까지 색종이 오리기 그림만을 계속했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사람인 마티스는 20세기 후반의 추상화가들, 특히 애드 라인하르트와 마크 로스코, 시몽 한타이, 클로드 비알라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앙리 마티스 <푸른 누드>(Blue Nude Ⅳ. 1952), 앙리 마티스 미술관, 니스 자유롭게 드로잉한 지면 위에 푸른색의 과슈(Gouache)로 색칠한 종이를 오려 붙여 만든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 속 인체의 완벽한 포즈를 위해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거쳤다. 평면 위에 치밀하게 색종이를 오려 붙여, 그림이 아니라 마치 입체적인 조각품을 감상하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앙리마티스 <왕의 슬픔>, 1952년 ,MNAM,파리 말년에 마티스는 색종이 오리기 기법을 구사하였다. 이 기법은 그로 하여금 ‘색채 속에서 생살의 상태로 오려낼 수’ 있게 해 주었으며, ‘조각가들의 직접 깎기 작업을 연상’시켰다. 1952년 마티스는 83세였으며 <푸른 누드>들의 즐거움 이후에 나타난 것은 이 기념비적인 작품의 우수였다. 이 작품에서 마티스는 검게 칠해진 왕에게 자신을 투사하면서 자신의 주요 주제들인 음악과 춤, 사람과 죽음에 대한 마지막 명상에 몰두하였다. 아마도 헤롯 왕 앞에서 춤추는 살로메에 대한 고대의 주제에서 영감을 얻은 듯한 이 장면에서, 선명한 색들과 도처에 보이는 식물 형태는 죽음의 검정색과 대조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왼쪽으로 젖혀진세 인물의 몸은 춤의 움직임과 음악의 리듬은 연상시킨다. 깊이감 없는 이 실루엣들은 입체감의 제거에 관한 탐색의 종착점이었다. 장식미술의 빈약함을 능가하는 이 알레고리를 통해, 마티스는 우리에게 자신의 작품과 삶의 쾌락에 대한 마지막 성찰을 전해준다. 그리고 그 성찰은 <자화상>(1900년), <사치, 고요, 그리고 쾌락>(1904년), <삶의 기쁨>(1906년)과는 매우 다른 스타일을 통해 나타난다. Ph. ⓒ Arch. Larbor ⓒ Succession H. Matisse,1998

 

 

나는 푹신한 안락의자처럼 육신의 피로를 잊게 해주는 예술을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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